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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티비현금많이주는곳 [오마주] 반복되는 대형 화재참사…진실을 찾아서

이상학 0 5 20:28
인터넷티비현금많이주는곳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지난 26일 홍콩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수백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실종자 수는 300명에 육박했고, 당초 50여명으로 발표됐던 사망자 수는 현재 100여명에 이릅니다. 수색작업이 이어지면서 사망자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화재가 발생한 ‘웡푹 코트’는 홍콩에 위치한 32층의 고층 아파트로 총 8개동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담배 꽁초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은 인테리어를 위해 아파트 외벽을 감싸 놓은 대나무 비계와 안전그물을 타고 8개동 중 7개동에 옮겨붙었습니다. 불길은 매층에 놓인 스티로폼 자재와 가구를 태우며 건물 안쪽까지 번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끔찍한 대형화재 참사가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고층아파트의 화재와 가연성 건설 소재로 인한 대형참사 발전 가능성은 여러 해 동안, 많은 국가에서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영국에서 발생한 ‘그렌펠 타워 참사’입니다. 건물 4층 냉장고에서 시작된 불길은 23층 아파트 전체를 삼켰고, 72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한 동의 아파트에서 왜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까요. 그리고 이 화재사건은 어떤 식으로 해결되고 있을까요. 2025년 6월 공개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그렌펠 화재 사건: 진실속으로>는 당시 아파트 거주민들과 소방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의 원인과 이후 정부의 대처를 기록했습니다.
“그렌펠타워 16호에서 불이 났어요 4층이요.. 빨리 빨리 빨리!”
“네 불타는 건 아는데 방금 전화하셨잖아요. 괜찮으시죠?”
2017년 6월14일, 주민 대부분이 잠든 오전 0시54분. 그렌펠타워 화재의 첫 신고가 접수됩니다. 소방대원이 도착한 건 약 10분 뒤인 오전 1시5분, 소방관들은 해당 세대에 도착했고 냉장고에서 난 불을 진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평범한 주방 화재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잔불을 확인하려 열탐지기를 켜는 순간, 불이 윗집으로 옮겨붙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화재 상황을 보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는 건물 한쪽 외벽을 타고 불이 커지고 있었죠.
한 소방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콘크리트 건물에서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대개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아파트의 특성상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초기 진압이 될 경우 근처 세대로 옮겨붙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화재가 번진 원인은 한 해 전 외벽 인테리어용으로 설치된 알루미늄 외장재에 있었습니다. ACM이라 불리는 이 소재는 얇은 알루미늄 사이에 고분자물질이 채워진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고분자물질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굉장히 타기 쉽고, 불이 났을 경우 진화가 매우 어려운 게 특징입니다. 그런데도 ‘가장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택된 외장재에는 최소한의 방염처리조차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ACM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화재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이를 숨긴 채 판매했죠. 대피가 어려운 고층빌딩에 사용하긴 어렵다거나, 방염처리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망자 수가 늘어난 또 하나의 원인은 영국 소방서의 미숙한 대처에 있었습니다. 불씨를 끄면 다른 세대까지는 불이 닿지 않는다는 판단에 “탈출시켜달라”는 주민들에게 “집에 머물라”고 2시간 넘게 지시했습니다. 그사이 불은 건물 전체를 삼켰죠. 불이 빠르게 번지고 잘 꺼지지 않는 외장재 화재 특성에 대해 몰랐던 탓입니다. ‘대기하라’는 말에 사망자가 늘어났다는 이유로 ‘영국판 세월호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소방서는 더 잘 대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영국 다른 지역에서 플라스틱 소재의 외장재로 인해 불이 번지고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소방청은 안전관리 규정과 구조 규정을 변화시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너무 많은 사람의 친구와 가족이 죽었고, 이를 구하지 못한 소방관들은 책임감에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그렌펠타워에 정의를’이라고 외치며 매주 거리에 나섰습니다. 사건 발생 한 달 후부터 공청회가 진행됐고, 7년 만인 2024년 공개조사 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보고서는 “화재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며 여러 권고안을 내놓으면서도 “각각 책임소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소방청과 정부는 해당 사건 이후 보고서 권고안을 반영했다고 주장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다큐가 나온 지난 6월까지 ACM 외장재가 사용된 건물에서 수십만 명이 살아가고 있었고, 소방청의 ‘화재시 주택 내 대비’ 규정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보면, 그렌펠의 ACM과 홍콩의 대나무 비계, 안전그물이 겹쳐 보입니다. 인터뷰에서 보이는 이들의 고통과 허망함은 한국에서 일어난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왜 이런 비극은 늘 발생하고 반복되는 걸까요. 왜 쉽게 개선되지 않는 걸까요. 효율과 돈의 논리로 안전을 포기하고 있는 세상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샤오첸의 젓가락이 큰 접시로 향했다. 첫 번째 완자부터 시작해 투명한 완자, 고기 피 완자, 양념에 재운 완자, 아삭한 완자, 토란 완자 순서로 먹었다. (중략) 탕을 마시고 무절임을 먹었다. 그런 뒤 같은 순서로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중략) 나는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거침없이 내뱉었다. ‘우리 함께 타이완을 구석구석 돌면서 미식을 즐겨요!’”
<1938 타이완 여행기>는 타이완 미식 체험을 하는 여행기 형식의 소설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식민지 타이완에서 1년을 보내게 된 일본 여성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통역을 맡은 타이완 여성 왕첸허(샤오첸)의 도움으로 타이완 곳곳을 여행하며 갖가지 풍경과 음식을 경험하는 내용이다. ‘군침 도는’ 문장이 술술 읽힌다. 하지만 식민주의, 젠더, 정체성, 역사의 해석 등 이야기의 겹을 층층이 쌓아 올린 깊이가 결코 간단치 않다.
소설은 길거리 간식부터 각 지역의 토속 요리, 연회 음식까지 다채로운 식재료와 맛의 묘사로 지면을 채운다. 이를테면 캅아 국수라는 음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 “돼지고기 다짐육을 다진 파와 함께 볶고, 바지락과 말린 생선가루를 넣어서 국물을 만들죠. 국물이 끓으면 넙적한 면을 넣어서 익히고요. 그릇에 국수를 담은 뒤 볶은 고기 고명을 그 위에 얹어요. 흰 후추가루도 살짝 뿌리고요. 바지락과 돼지고기가 어우러진 맛있는 국물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을 생각하면 두 그릇은 먹고 싶어진답니다.” 둘의 만남의 계기가 되는 과쯔(짭짤한 씨앗 볶음)로부터 시작해 열두 장에 걸친 요리들로 옛 타이완의 문화와 풍속 그리고 식민지 내 권력 관계에 대한 통찰까지 엮어낸다.
중일전쟁 중 타이완 미식여행 하는일본인 작가·타이완인 통역 이야기식민주의·젠더 겹겹이 쌓아 올리며제국의 문제적 시선·경계에 질문
이러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틀이 여성 간의 로맨스나 연애를 다루는 장르인 ‘백합 소설’이라는 점도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다. 미묘한 긴장이 깔려 있는 두 여성의 ‘밀당’을 통해 식민자-피식민자, 고용주-고용인, 가문의 후계자-서녀라는 경계를 흔들고 의문시하는 것이다. 첸허는 여러 언어에 능통한 재원이지만 첩실의 딸이라는 한계 때문에 가문의 뜻을 따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치즈코는 그런 그에게 호감과 연민을 느껴 보호를 베풀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치즈코의 ‘악의 없는’ 시선이 문제적이다. 그는 제국의 강경한 방식을 비판하지만, 본섬(일본-내지와 타이완을 구별하는 표현)을 ‘개발(실제로는 타이완 고유의 것을 파괴)하는’ 제국은 긍정적이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샤오첸이 그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던 이 식민자의 시선을 미시마라는 인물은 신랄하게 지적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본섬의 맛이라는 건 사실 진짜 맛있는 맛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것보다는 희귀하고 기이한 짐승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지요. (중략) 제국이 본섬에 아름다운 걸 더해줬다고요? 아오야마 선생님의 말씀은 본섬과 본섬 사람을 우롱하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멋진 것들은 그저 내지인에게나 그러할 뿐이지요.” 알 수 없는 샤오첸의 속마음을 탐구하는 과정은 치즈코가 식민지를 대상화하던 자신의 맹목을 깨닫고, 진짜 타이완의 모습을 발견하는 여정이 된다.
이 소설은 실제 기록이 아닌 ‘발견된 여행기’처럼 작가가 구성한 메타픽션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일본인 치즈코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국어판 번역자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작가에게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타이완을 알려면 반드시 일본어로 된 기록을 읽어야 하는데, 이는 제국의 언어로 작성된 것이기에 왜곡되고 생략된 역사일 수밖에 없다. 번역된 행간에서 역사적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스스로를 번역자로 설정하고, 각주를 통해 끊임없이 소설 속 오류를 지적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단순히 식민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 관찰 자체를 문제화하는 것이다. 다채로운 재료들로 솜씨 좋게 요리한 음식이 미각을 깨우듯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소설이다.
양솽쯔(41·楊双子)는 작가가 쌍둥이 동생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면서 쌍둥이라는 뜻의 일본어 ‘双子’를 공동 필명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2015년 동생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홀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권위 있는 도서상인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을 타이완 최초로 받았다.
지난 11월19일,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영화의 작품성이나 의의보다 감독이나 배우의 유명세로 상을 나누었다는 비판이나, 여전히 영화를 함께 만드는 스태프의 존재는 생략된 시상식의 구조 등 어딘가 찜찜하다는 반응을 남긴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가장 큰 화제는 축하 공연에서 탄생했다. 한 달 전 공개한 신보 ‘Good Goodbye’를 부른 화사는 백댄서나 특수효과, 화려한 안무 없이 오롯이 혼자서 무대를 채운다. 그 끼와 매력에 관객이 푹 빠져들어갈 때쯤 배우 박정민이 등장한다. 박정민은 화사와 ‘Good Goodbye’ 뮤직비디오에서 연인으로 출연했고,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참이다. 박정민과 마주한 화사는 간단한 안무를 하며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간다. 박정민은 화사의 구두를 든 채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짧은 동작을 따라 하고, 마지막 가사인 ‘굿바이’를 함께 부른다. 이 장면은 실시간으로 주목받더니 영화제가 끝난 후에도 다양하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아, 좋다. 좋은데? 진짜 좋다. 왜 좋지? 이 장면의 특별함은 열광하는 대중의 반응과 합쳐지며 완성된다. 무대 영상의 조회수가 터지자, KBS는 ‘단독 캠’ ‘리액션 캠’까지 공개하며 들어오는 물에 열심히 노를 저었다. 화사의 노래는 음원 순위 1위를 차지하며 역주행했고, 1분 남짓한 영상은 ‘설레는 영상’으로 알고리즘을 탔다. 쇼트폼과 영상 댓글은 나노 단위로 도대체 이 좋은 느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촘촘하게 분석한다. 이 짧은 영상이 왜 이렇게까지 몰입되고, 영화 한 편 본 것 같은 충만함을 선사하며,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다는 김국환의 노래 가사처럼, 그다지 관심 받지 못한 이번 청룡영화상이 건진 선녀 옷이 바로 화사의 무대다. 화사와 박정민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로맨스의 상(像)이다. 이것은 각각 화사와 박정민이라는 연예인이 그동안 쌓아 올린 이미지와 그들이 걸어온 길이라는 역사가 있기에 가능한 조합이다. 그리고 배경에는 이상적인 로맨스가 불가능해진 현실에서도 시들지 않는, 사랑과 수용에 대한 현대인들의 갈망이 깔려 있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먼저, 청룡영화상 축하 무대는 화사의 ‘Good Goodbye’ 뮤직비디오에서 비롯되었다. 독보적인 여성 솔로 가수인 화사는 이번에 평소와는 다른 콘셉트를 시도했다. ‘Good Goodbye’는 한때 사랑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놓아주며 그 아픔까지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는 연인의 ‘좋은 안녕’을 노래한다. 화사가 박정민을 직접 섭외했고, 두 사람은 뮤직비디오에서 강렬한 개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화사는 구두를 벗어 던지고 달리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선글라스를 끼고 껌을 씹으며 익살스러운 매력을 뽐낸다. 들고 있던 짐을 내동댕이치고 상처투성이의 무릎을 드러낸다. 그 곁에서, 박정민은 화사의 구두를 든 채 조용히 따라오거나 춤추는 모습을 지켜본다. 박정민이 화사에게 무언가를 하는 순간은 앞머리를 넘겨줄 때 정도이다. 이 장면은 로맨스의 현실감을 더하면서도 ‘제멋대로인 여자친구를 받아주는 남자친구’ 같다며 특히 많이 회자되었다. “서로 말 진짜 안 들을 것 같은 커플”이라는 댓글처럼 짓궂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화사와 박정민이 가진 이미지로 극대화된다. 화사는 여성 연예인을 옥죄는 온갖 잣대와 가혹한 평가 속에서, 속옷 착용 여부로 도마에 오르거나 획일적인 외모를 강요하는 조롱과 간섭에 시달렸다. 악플 세례와 찬사라는 양극단을 오가면서 화사는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체했어. 서러워도 어쩌겠어. 날 무너뜨리면 밥이 되나”(Maria)라고 노래하고, “생김새 하나하나 난 꽤나 괜찮아. 기준만 수백만 가지, 뭐가 맞는 거지. 정답은 딱 한 가지, I Love My body. 살 빠졌네 안 빠졌네, 그게 왜 궁금했던 건데”(I love my body)라고 일갈했다. 그야말로, 화사답게.
이렇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찍어 누른다고 찍어 눌러지지 않는 여자를 협박하는 방법은 누구도 너를 사랑하거나 받아주지 않는다는 저주(?)다. 이때의 사랑은 당연히 남자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 말은 이성애자 여성의 내면을 분열시킨다. 선택지는 둘 중 하나뿐인 것 같다.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나’를 깎아내 틀에 맞추거나, 사랑을 볼모로 하는 억압에 맞서 남자의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거나. 세상이 남자의 사랑과 인정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기에, 그것을 거부하고 내팽개치는 행동은 저항적 실천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갈망하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내가 나로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 또한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래서 화사의 곁에서, 세상이 별나다고 하는 여자의 행동을 별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는 연인의 존재가 더욱 특별해 보이는 것이다. 억지로 구두를 신기려고 하거나 구두를 신으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묵묵히 구두를 들고 따라가고 구두를 집어 던져도 그저 따뜻하게 지켜보는 태도 말이다. 여기에 누가 봐도 춤과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몸짓으로, 화사가 하고 싶어 하니까 안무를 함께 해주는 모습은 화룡점정이다. “아 얘 좀 골 때리는데, 그래도(그래서) 좋네?”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로맨스의 공식은, 로맨스가 자신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잡아먹을까봐 두려운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새롭게 호소한다. 그러니 청룡영화상 축하 무대의 영상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다 받아줄 것 같은 박정민 눈빛 아래서 자유롭게 흘러가는 화사가 나를 영원히 설레게 함”이고, 바이럴되는 쇼트폼의 제목은 “말괄량이 여친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는 눈빛”이다.
어찌 보면 잘 짜인 판이다. 화사가 차린 상에서 배우는 숟가락질만 하면 되니, 박정민이 아니라도 흥했을 설정이다. 하지만 화사가 화사라서 그 장면이 더 살았듯, 박정민 또한 박정민이라서 입에 쫙 붙는 양념을 친다. 자신만의 분위기와 해석으로 맡는 역할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박정민은 성실한 독서가이면서 출판사를 세워 책을 만드는 다소 특이한 행보를 걷고 있다. 박정민의 매력은 <이영지의 레인보우>(KBS2TV)에서 ‘고민중독’을 열창한 영상에서도 드러난다. 나름 준수하게 고음을 뽑아내면서도 덩실대는 몸짓과 애매한 시선 처리,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 끝에 읊조리는 “좋아해”는 실수로 노래방 옆방 문을 열었을 때 맞닥뜨리는 ‘날것의 현실성’을 구현한다. 아 진짜 같네. 왜 진짜 같지? 잘생긴 배우가 연기까지 잘하면 짜증 난다고 구시렁거리며, 도통 멋질 궁리라고는 안 하는 듯한 박정민의 캐릭터는 (그것까지 연출되고 계산된 것이라 할지라도) 화사와 멋진 무대를 끝낸 뒤, “구두 가지가!”라고 외치며 산통을 깨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 사람 역시 무색무취에 받아주는 역할만 하는 쿠션이 아니라는 긴장감, 말괄량이 여자친구를 박정민이 받아주는 만큼 화사 또한 이 ‘웬수’ 남자친구를 견뎌야 한다는 관계성의 재미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무게로.
화사와 박정민의 무대가 흥하면서, 일명 ‘박정민 눈빛’을 연습하거나 학습한다는 불미스러운 소문이 돌았다. 연인 간에 장난으로 하는 놀이는 그렇다 치고··· 그 장면에서 박정민이 설레는 이유는 자세와 눈빛이라는 단편적인 요소로 성립되는 게 아니다. 로맨스와 ‘좋은 남자’를 향한 여성들의 욕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 현실은 험난하고 위험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할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이 58%에 이른다. 현재는 연애의 주역이라고 하는 2030 청년 간의 젠더별 정치 성향이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갈리는 시기이다. 11월14일에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성 114명이 모였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해당 퍼포먼스는 경찰에 신고하고 보호조치를 받았음에도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겪은 여성이 114명이고, 이는 3일에 한 명이 피해를 입는 수치임을 의미한다.
사랑이 불가능해 보이는 세상에서 사랑을 갈망하기. 온라인 커뮤니티의 허세와 피해의식, 폭력성에 물든 남성성과 대조되는 캐릭터로서 박정민이 조금 우습게 보일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노래 부르고, 출판사 대표지만 직원에게 놀림당하는 모습은 호감을 이끌어낸다. 한때 ‘나를 욕망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아저씨’가 ‘좋은 남자’로 사랑받았던 것처럼, 자신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상대 역시 있는 그대로 수용할 줄 아는 남자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번 청룡영화상 무대는 그러한 대중의 욕망을 입증하는 이벤트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완전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상징성과 기대를 부여하거나, 여전히 좋은 남자를 찾고 싶은 마음까지 조롱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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